지구의 중심핵은 주로 금속 철로 이루어져 있지만, 액체 상태의 외핵에는 원자번호가 작은 경원소가 10퍼센트 정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경원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핵에 녹아들었을까? 지구핵의 경원소 문제는 지구를 만든 미행성의 성분이나 그것들이 집적하여 지구가 성층 구조를 이루는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외핵에 10퍼센트나 되는 불순물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핵을 통과하는 지진파의 속도와 밀도의 관계에서 착안했다. 여러 물질을 통과하는 지진파의 속도와 밀도 사이에는 선형 관계가 성립하며, 그 계수는 물질의 평균 원자량이 클수록 증대하는 경험칙이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물질의 탄성을 상세하게 조사한 지구 물리학자 프랜시스 버치(Albert Francis Birch)가 발견한 것으로 버치의 법칙이라고 한다. 중심핵은 고온 고압 상태이므로 고압에서 지진파 속도와 밀도의 관계를 토대로 핵이 어떤 조성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림 3-6은 충격 압축 실험으로 여러 가지 물질을 고온 고압 상태로 만들었을 때, 지진파 속도와 밀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에는 맨틀과 핵의 지진파 속도 및 밀도의 관계도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내핵은 순수 철로 이루어졌으며, 외핵은 순수 금속보다 지진파 속도가 낮아 경원소로 이루어진 불순물을 10퍼센트 정도 포함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외핵의 경원소가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연구는 1960년대 이후 지구과학에서 큰 관심사였다. 196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암석 학자 링우드는 외핵의 경원소가 규소라는 설을 제창했다. 그는 암석질운석 가운데 엔스타타이트 콘드라이트라는 일군이 있고 그들에 포함된 금속 철에 규소가 함유된 것에 주목, 경원소가 규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엔스타타이트 콘드라이트에는 물과 같은 휘발성 물질이 전혀 없으므로, 이것이 지구의 재료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휘발성 물질이 풍부한 탄소질 콘드라이트라는 운석에서 지구가 생겼으리라고 보고 있다. 그것이 환원성 성분과 산화성 성분으로 나뉘어, 환원성 부분이 규소를 함유한 철로 이루어진 핵이, 산화성 성분이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원시대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링우드 설의 약점은 지구핵이 철로 이루어져 있음에 반해, 그것을 덮고 있는 마그마가 산화철을 포함하고 있어 화학적으로 평형하지 않은 점, 철로 이루어진 핵과 상보적인 생성물인 팽창한 수소나 일산화탄소 대기는 현재의 대기 및 해양 조성과 모순된다는 점이다. 이에 머시 등의 지구화학자들은 지구핵의 경원소가 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지구는 일반 콘드라이트, 탄소질 콘드라이트, 철질 운석이 5대 4대 1의 비율로 집적해 생겼다고 한다. 일반 콘드라이트는 트로일라이트라는 황화철을 함유하여 철질 운석 등과 함께 맨틀 안을 침강하여 핵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탄소질 콘드라이트에는 휘발성 성분이 있으므로 대기나 해양도 무리 없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철과 황이 공조하는 물질이 녹는 온도가 순수 철이 녹는 온도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지구 형성기에 철과 규산염이 쉽게 분리되었으이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설은 황이 나트륨이나 칼륨보다 휘발성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지구 내부에 존재할 가능성이나 정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며, 지구핵의 경원소라 하더라도 6퍼센트 정도만 공급할 수 있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1970년대에 링우드는 자신의 설을 바꾸어, 지구핵의 경원소가 산소라고 주장함으로써 지구핵의 경원소 문제에 새로운 불씨를 만들었다. 온도와 압력이 낮은 조건에서는 철과 산화철을 섞이지 않지만 중심핵과 같은 고온 고압 상태에서는 철에 산화철이 녹아들지도 모른다. 이런 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철에 산화철을 섞은 시료를 고온 고압 조건에서 가열하여 철 안에 산소가 녹아드는 지를 알아보는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만약 지구핵의 경원소가 산소라면, 중심핵과 맨틀의 화학적 비평형성 문제는 해결된다. 현 단계에서는 황, 산소, 규소 등 유력 후보 단독으로는 경원소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황, 산소, 규소가 혼합된 결과 10퍼센트에 이르는 밀도 부족을 초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밖에 수소나 칼륨 등도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칼륨은 방사성핵종을 가지므로, 지구핵 속에 칼륨이 녹아 있다면 지구 내부의 온도 구조나 열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원소는 화학적 성질에 따라 몇몇 그룹으로 나뉜다. 철과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철원소, 구리와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동원소, 규산염과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석원소라고 한다. 맨틀을 이루는 물질의 화학 조성을 조사하면, 지구의 재료 물질이 되는 운석과 비교하여 크롬, 바나듐, 망간, 코발트, 이리듐과 같은 친철원소가 현저하게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친철원소는 철에 녹아들기 쉬운 성질이 있으므로, 지구 형성기에 지구 내부가 녹아 철과 규산염 융해물이 분리됐을 때 이들 원소는 철분과 함께 중심으로 가라앉아 중심핵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금속의 핵과 맨틀의 분리 메커니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친철원소라 해도 철에 녹아드는 정도는 원소마다 다르다. 친철원소는 친철성이 약한 망간, 바나듐, 크롬, 친철성이 중간 정도인 텅스텐, 코발트 등의 그룹, 친철성이 강한 백금, 금, 이리듐과 같은 원소로 크게 나뉜다. 지구 형성기에 맨틀이 녹아 금속 핵과 규산염 융해물이 분리됐다면 제각각의 친철원소가 어느 정도 맨틀에 남았는지는 그 원소의 철과 규산염 융해물 사이의 원소 분배계수로 추정할 수 있다. 분배계수란 두 가지 상에서 어떤 원소의 농도비를 지수화한 것이며, 온도나 압력, 상의 화학 조성에 따라 값이 변한다. 분배계수를 알면 철과 규산염 융해물에 함유된 농도를 추정할 수 있다. 비교적 낮은 압력 상태에서 실험으로 얻은 분배계수를 사용하면, 규산염 융해물에 함유되는 친철원소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지며 원소별로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맨틀 물질 속의 친철원소는 줄어들지만, 철과 평형이었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높은 농도를 띠고 있으므로 과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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