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이 연구를 진행하는 데 근거로 삼았던 기본적인 생각이 짧은 기간에 뒤집어지는 사건을 과학 혁명이라 부른다. 과학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토머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1962)라는 저작에서 고찰한 모델을 널리 받아들였다. 쿤은 연구자가 연구를 진행하는 데 근거로 삼는 학문의 큰 체계를 패러다임이라 하고, 과학 혁명이란 오래된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1960년대에 일어난 판구조론 혁명의 경우,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패러다임은 땅덩어리는 움직이지 않으며 조산대는 지향사 조산 운동이라는 상하 변동으로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런 학설은 지구과학 이론을 해석하거나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학설에서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예측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인 판구조론에서는 조산대는 판의 상호 운동에 의해 대륙 위에 놓인 판끼리 충돌하여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자 새로 형성된 조산대에서는 지진활동이나 화산활동, 그리고 활발한 지각변동과 같은 지구과학 분야의 다양한 정보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판이 상대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 미세한 이동 속도를 측정할 수 없을까? 대륙지각은 어떤 역사를 거쳐 현재와 같은 크기와 구조가 되었으며, 이산화탄소나 물 같은 지구 표층의 여러 물질은 대기, 해양, 지각, 맨틀 사이를 어떤 구조로 움직일까? 판의 운동을 일으키는 힘은 무엇일까? 일단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자, 아직 풀리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를 새로운 지구관을 근간으로 삼아 연구해 지구과학은 크게 발전했다. 이런 여국가 얼마 동안 계속되면 많은 연구 데이터는 정형화되고 신선미가 없어져, 새로운 연구를 전개할 돌파구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런 시기에 거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공룡이 멸종했다는 가설이 등장해 학계에서 새로운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예컨대 지구의 역사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를 돌아다니며 지질조사를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열쇠가 되는 하나의 지층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에 그런 지층이 있을까? 과거 지구에 천체 충돌 이외에도 돌발적인 격변이 있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또는 빙기와 간빙기가 되풀이되는 규칙적인 변동은 어떤 작용 원리에 의해 일어날까? 그러한 의문에 답하는 방법을 발견하려면 이제까지 시행한 연구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는 없을까? 줄무늬 지구과학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일본 나고야 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논의를 계기로 생겨난 것이다. 줄무늬 지구과학이 성립될 무렵, 공룡 멸종의 수수께끼와 더불어 큰 화제가 되었던 지층이 있다. 그림 1-26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린더스 산지에 있는 6억 년 전 지층으로, 이 지층에는 또렷한 줄무늬가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약 10층마다 짙은 부분이 있는 점이다. 무늬가 옅은 곳은 거친 모래 입자이고 색이 짙은 부분은 부드러운 점토 입자로 되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질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이 줄무늬가 지구환경의 규칙적인 변동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원인을 찾았다. 현재의 지구에서 10회마다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환경 변동은 무엇일까? 그는 주기적인 줄무늬가 '11년 주기로 증감하는 태양 흑점의 변동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6억 년 전에도 현재와 똑같은 태양 흑점의 변동이 있었던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논문이 발표되자 매우 놀랐다. 태양의 내부에서는 수소 원자핵 4개가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 열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으며, 태양 중심부에서 헬륨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천문학자들은 태양 광도도 서서히 밝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태양의 장기적인 변동에도 불구하고, 11년을 주기로 하는 태양 흑점 수의 변동이 6억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태양 연구라고 하면 천체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이 일반적이며, 발밑의 지층에 태양의 역사를 해명할 연구 시료가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윌리엄스의 설에 대한 비판은 태양 흑점의 변동이 어떻게 해서 지층의 줄무늬를 만들었는지를 둘러싼 논의와 동시에 진행됐다. 확실히 태양 흑점은 11년 주기로 변동하지만, 광도의 변동은 아주 미미하다. 그런 미미한 변동이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또 1년마다 퇴적물 공급에 동요를 일으켰을까? 그러나 그런 인과 관계로 생긴 지층은 현재의 지구에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윌리엄스의 설은 발표되고 나서 10년 가까이 지나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먼저 11층이 아닌 14층마다 줄무늬 모양이 되풀이되는 다른 지층이 발견되면서 해석이 흔들렸다. 또 지층의 줄무늬가 번갈아 짙어지거나 옅어지는 지층도 발견되어, 태양 흑점의 변동이 줄무늬를 만드는 원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면 이런 무늬의 지층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그것은 조수의 변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림 1-27에서 보이는 층마다 농담이 되풀이되는 무늬가 하루에 두 차례 있는 조수의 변동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자. 그것들이 10여 층씩 모여 더 큰 주기를 형성하는 것은 한사리와 조금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층을 재검토한 결과, 한사리와 조금의 주기가 26회 모여 1년마다 새겨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브시스템 그리고 대기와 해양의 변동 (0) | 2022.08.04 |
---|---|
줄무늬지구과학으로 해독하는 지구사 (0) | 2022.08.04 |
멸종의 시나리오와 가설의 검증 (0) | 2022.08.04 |
점토층의 수수께끼와 공룡멸종설 (0) | 2022.08.04 |
대양저확대설과 판구조론의 태동 (0) | 2022.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