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레즈 등이 이와 같은 가설을 발표하자, 세계의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이 이 가설에 반론을 제기했다. 공룡의 멸종에 천체 현상이 관련될 까닭이 없다,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인은 지구에 있을 것이다, 공룡 멸종과 같은 지구 역사상의 큰 수수께끼를 전군가가 아닌 사람이 가설을 제창하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많은 비판은 감정적이었으나, 그중에는 거대한 화산의 분화로 공룡이 멸종했다는 대립되는 가설을 제시하면서 반론을 펼치는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가설의 뛰어난 점은 가설의 올바름을 증명할 방법을 제시한 데 있다. 즉 만약 백악기 말에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이탈리아 이외 지역의 중생대와 신생대 경계 지층에도 점토층이 있고, 거기에는 분명히 이리듐이 고농도로 함유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천체 충돌이 일어났다면 충격파로 인해 암석이나 광물이 심하게 변형되었을 것이며, 그때 생긴 특징적인 암석 조직이 발견될 것이다. 광대한 평원에 느닷없이 생긴 거대한 원형 구조가 화산의 화구인지,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인지를 둘러싸고 지질학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오래도록 논쟁을 벌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 섀터콘(shatter cone)이라는 암석 표현의 파단 조직이나 충격 변성작용과 같이 심한 충격으로 암석이 급격히 비틀어져 생기는 광물의 특징이 천체가 충돌했음을 보여주는 물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물증으로 유명한 것으로 석영 입자에서 보이는 라멜라(lamella) 구조가 있다. 또한 스피룰이라는 알갱이 모양의 입자도 천체가 충돌한 충격으로 암석이 융해해 물방울 모양이 된 굳은 암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앨버레즈 등이 제기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잇달아 발견되었다. 그림 1-21은 세계 각지에서 확인된 K/T 경계층의 조사 지점이다. 앨버레즈의 가설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던 까닭을 이해하려면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지질학의 역사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앨버레즈가 제창한 천체충돌설을 천변지이설이라고 간주한 지질학자가 적지 않았다. 천변지이설이란 지상에 어떤 격변이 일어나 생물이 멸종했다는 설이며, 그리스도교의 '노아의 홍수 전설'도 그중 하나이다. 천변지이라면 종교적 전설까지 포함하므로 지질학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격변설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박물학자 조르주 퀴비에는 프랑스 파리 분지에 노출된 제3기 지층에서 보이는 화석의 산출 기록을 근거로 생물이 반복적으로 멸종하고, 그때마다 생명의 기원이 있었다고 부르짖었다. 그는 지층마다 나오는 화석의 종류가 다른 것을 주목하고, 그것이 옛날 생물이 멸종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해석에 정면으로 맞서 격변설을 매장시킨 데는 영국에서 확립된 제일설의 영향이 컸다. 18세기 후반의 영국에서는 아직도 '성서'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지구의 탄생은 '창세기'에 나오는 전설로 설명할 수 있으며, '성서'의 기술을 충실하게 검토하면 그것은 기원전 4004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구가 탄생하고 나서 현재까지 흐른 시간은 불과 6000년 정도인 셈이다. 제임스 허턴은 스코틀랜드 지방에 줄줄이 솟아 있는 산을 바라보며, 침식에 의한 대지 변화가 해마다 조금씩밖에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지구가 '성서' 해독으로 얻은 연대보다 훨씬 더 오랜 과거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허턴은 해안에 노출된 지층을 관찰해 대지는 침식되어 바다가 되며, 바다가 융기하여 땅이 되기도 했던 것을 알아냈다. 또 바다가 솟아올라 땅이 되는 것은 지하에서 마그마가 관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턴의 견해는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주 먼 과거부터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찰스 라이엘은 '지질학 원리'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견해를 체계화했다. 허턴이 제창하고 라이엘이 체계화한 생각은 '현재는 과거를 알아내는 열쇠이다'라는 말로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런 견해를 오늘날 제일설이라 한다. 프랑스에서 퀴비에가 부르짖은 격변설은 영국에서 제일설이 대두되면서 사라졌다. 제일설은 지질학 신념 체계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천체 충돌 같은 새로운 격변설을 제시하려면 학계의 비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천체 충돌 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로 간주된다. 앨버레즈가 제창한 가설은 과학사적으로 보더라도 19세기 초기에 대립한 격변설과 제일설을 융합하는 커다란 진보였다. '생물 대량 멸종'이란 많은 생물종이 한꺼번에 사라진 지질시대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킨다. 지질학자는 차곡차곡 쌓인 지층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산출 화석의 변천을 토대로 지질시대를 정했다. 즉 지질시대의 경계에서는 오래된 생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물종으로 바뀌었다. 만약 중생대 백악기 말에 큰 천체가 충돌하여 공룡과 같은 생물이 일제히 사라졌다면, 고생대 페름기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의 경계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경계에서도 생물 대량 멸종이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 경계에서도 큰 천체가 낙하해 환경이 격변한 것이 아닐까? 앨버레즈 등이 연구한 고농도의 이리듐을 함유하는 점토층이 천체 충돌로 인해 형성된 것이라면 공룡을 멸종시킨 충돌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이것도 조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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